게리맨더링: 유권자가 의원을 고르지 못하는 지도
민주주의의 기본 약속은 유권자가 대표를 고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선거구에서는 그 순서가 뒤집힌다. 대표가 먼저 자신을 뽑아 줄 유권자를 고른다. 선거구 경계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같은 표가 전혀 다른 권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200년 전 도롱뇽 모양의 선거구에서 시작된 게리맨더링은, 오늘날 미국 대의제의 가장 끈질긴 균열로 남아 있다.
도롱뇽에서 시작된 단어

게리맨더라는 말의 기원은 18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주 상원 선거구를 다시 그리는 법안에 서명했는데, 그중 한 선거구의 기괴하게 길고 굽은 모양이 도롱뇽을 닮았다는 조롱을 받았다. 비판자들은 주지사의 이름 게리와 도롱뇽을 뜻하는 샐러맨더를 합쳐 게리맨더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풍자 만평과 함께 빠르게 퍼졌다. 브리태니커가 정리한 게리맨더링 항목은 이 용어가 처음부터 정치적 조롱의 산물이었음을 기록한다.
이름은 오래됐지만 기법은 더 오래됐고, 지금도 정교하게 작동한다. 핵심 수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상대 정당 지지자를 소수의 선거구에 몰아넣어 그들의 표를 한곳에 가두는 패킹, 그리고 상대 지지자를 여러 선거구에 잘게 흩뿌려 어디서도 다수가 되지 못하게 하는 크래킹이다. 두 기법을 함께 쓰면, 전체 득표율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처진 정당이 의석에서는 다수를 차지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0년마다 돌아오는 권력의 칼자루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연방 하원과 주 의회의 선거구를 다시 그린다. 이 재획정 과정은 본래 인구 변화를 공정하게 반영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많은 주에서 이 칼자루를 쥔 것은 다름 아닌 현직 의원들과 다수당이다. 자신의 재선과 정당의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이 그 권력을 결정하는 지도를 직접 그리는 이해충돌이 제도 안에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이 구조는 ACP가 추적해 온 정치 자금의 흐름과 맞물린다. 막대한 외부 자금이 특정 후보와 정당으로 흘러드는 통로를 다룬 ACP의 슈퍼팩 보도가 보여 주듯, 누가 돈을 대는가의 문제와 누가 지도를 그리는가의 문제는 같은 권력의 양면이다. 자금이 경쟁의 연료라면, 선거구 지도는 그 경쟁이 펼쳐지는 경기장 자체를 미리 기울이는 일이다.
법원이 문을 닫은 뒤
오랫동안 극단적 당파 게리맨더링은 연방 법원에서 다툴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2019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게리맨더링은 연방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 결정 이후 당파 게리맨더링을 견제할 연방 차원의 사법적 통로가 사실상 닫혔고, 그 빈자리에서 지도 그리기 경쟁은 더 노골적이고 더 빈번해졌다.
규모를 가늠해 보면 문제의 무게가 드러난다. 브레넌 정의 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선거에 쓰인 연방 하원 지도는 강한 반게리맨더링 기준을 적용했을 때와 비교해 평균적으로 민주당 또는 민주당 우세 선거구가 순 16석가량 적었다. 또한 현재 선거구 획정에 당파적 공정성 요건을 명시한 주는 17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에서는 인구 균등, 단일 선거구제, 투표권법상 인종 차별 금지 정도의 최소 규칙만 적용되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매우 편향된 지도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추정의 근거는 브레넌 센터의 게리맨더링 해설 보고서에 정리되어 있다.
정밀해진 지도, 좁아진 우연
과거의 게리맨더링이 직관과 경험에 의존한 거친 작업이었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데이터와 연산의 정밀과학에 가깝다. 선거구 획정 담당자는 가구 단위까지 내려가는 유권자 등록 자료, 과거 투표 이력, 인구통계 정보를 결합해 어느 블록을 어느 선거구에 넣을지 수천 가지 조합을 시뮬레이션한다. 그 결과 같은 득표율에서도 특정 정당의 의석을 극대화하는 지도를 거의 외과수술처럼 설계할 수 있게 됐다.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 만큼, 의도의 흔적은 더 짙어졌다. 이때 활용되는 가구 단위 개인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거래되는지는 ACP가 데이터 브로커 시장을 분석한 보도에서 따로 다뤘다.
이 정밀화는 견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노골적으로 기괴한 모양은 시각적으로 의심을 사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진 지도는 겉보기에 멀쩡한 경계선 안에 편향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양만으로는 더 이상 부당함을 가려내기 어려워졌고, 그래서 표심과 의석의 괴리를 수치로 분석하는 통계적 접근이 새로운 판별 기준으로 떠올랐다. 문제의 무대가 눈에서 데이터로 옮겨 간 셈이다.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특정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도 그리는 권한을 쥔 쪽은 정당을 막론하고 그 권한을 자기 이익에 쓰는 경향을 보인다. 다수당이 누구냐에 따라 편향의 방향이 바뀔 뿐, 구조 자체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한 정당의 도덕적 결함으로 환원하면 본질을 놓친다. 핵심은 지도를 그리는 자가 그 지도의 수혜자일 때 발생하는 이해충돌이라는 제도적 결함이다.
그렇기에 개혁 논의의 중심에는 독립적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있다. 현직 정치인이 아닌 독립 기구가 지도를 그리도록 한 주에서는, 당파 편향이 뚜렷하게 줄어든 지도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관찰된다. 투명한 공개 과정과 시민 참여, 그리고 당파 공정성 기준을 법에 명시하는 방안도 함께 거론된다. 누가 칼자루를 쥐느냐를 바꾸지 않으면, 기법만 정교해진 같은 문제가 10년마다 되돌아온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지도 한 장의 무게
유권자에게 게리맨더링은 추상적 제도 용어가 아니다. 내가 던진 표가 실제 결과에 얼마만큼 반영되는지, 내 지역의 대표가 누구의 이익에 응답하는지가 모두 지도 한 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사라진 선거구에서는 본선거보다 당내 경선이 사실상 승부를 가르고, 그 결과 후보들은 중도가 아니라 양극단을 향하게 된다. 게리맨더링이 정치 양극화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어떤 선이 어디에 그어지는가는, 그 선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얼마나 들리는가의 문제다.
ACP 정리
- 게리맨더링이라는 단어는 1812년 도롱뇽 모양 선거구를 조롱한 데서 비롯됐다. 기법의 핵심은 표를 가두는 패킹과 흩뿌리는 크래킹이다.
- 10년마다 인구조사 후 선거구를 다시 그리는데, 그 권한을 다수당과 현직 의원이 쥐는 이해충돌이 제도에 내장돼 있다.
- 2019년 연방대법원이 당파 게리맨더링을 연방 사법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경쟁은 더 노골적이고 빈번해졌다.
- 특정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칼자루를 쥔 쪽이 그것을 자기 이익에 쓰는 구조적 결함이 핵심이다.
- 독립적 선거구획정위원회, 투명한 공개 과정, 당파 공정성 기준의 법제화가 개혁안으로 제시된다.
자료: 브리태니커 게리맨더링 항목, 브레넌 정의 센터 게리맨더링 해설 보고서. 본 기사는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